북경에 임상의로 있던 시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과는
중국의 양의 (그쪽 표현으로 서의)와 한의(그쪽 표현으로 중의)가 환자를 놓고 토론하는 모습이였습니다.
한의대생이 아니였던 시기에도, 학부생일 때도 저는 한국에선 같은 환자를 놓고
양의와 한의가 서로 토론하여 진료 파트를 담당하는 상황은 보질 못했습니다.
지금에야 가족간의 관계든, 동창들의 관계든,사업적인 관계든, 한의와 양의가 같이 협진하는 병,의원이 간간히 있지만 (물론 이것도 설립자가 한의냐 양의냐에 따라 무게중심의 기울기가 다르지만)
개인적인 관계가 아닌 병원에서 환자를 놓고 가장 유리한 영역이 환자의 치료를 나눠서 스케줄을 짜는 것을 보고 부럽기도 하고 작은 충격이였습니다.
물론 중국은 "중의"가 "국의=國醫"입니다. 기본 법률상 개념이 저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나 저때나 상업적으로 발달한 중국인의 발빠른 계산관념으로는 서양인들이 중의에 대해서 갖는 관심과 호기심과 시대적으로
자연적인 치료방법이 대두되던 트렌드를 놓칠 리가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중국에 방문할때면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양의가 메이저고 한의사 마이너로 느끼 듯
중국도 서의가 메이저고 중의가 마이너로 느껴집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젊은 층에서는 위와 같은 경향성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국가적 시책에 따라 중의에 대한 확고한 버팀목이 있기에 제 눈으로는 환자들이 최적의 치료를 받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로 다발성 골절과 장기의 파열이 있는 환자가 응급실로 오면 중의와 서의가 토론하여 즉각적인 외과적 수술은 서의가 담당하지만
수술처치 후 조직의 재생이나 뼈의 융합, 그리고 수술과정 중에 있을 만한 여러가지 쇼크에 대해서 중의적인 탕약처치나 침구요법이 같이 시행된다는 부분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병동의 일부가 숙소다 보니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으면서 저를 통역해주던 영어 통역의 중의 "조걸=趙杰"이 응급실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이 분 덕분에 제가 침구골상학원의 임상실습시간 이외에도 응급실을 자주 내려가 볼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제 한의원을 개원해서 가장 감사하게 여겼던 부분도 저 부분이였습니다.
임상 각 과를 돌면서 또 하나 인상에 깊게 각인 된 과가 "부인과=부과(婦科) "였는데요. 공산국가답게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때문에(지금은 중국도 1가구 1자녀 정책이 바뀐 것으로 압니다만)
유산을 하러 많은 여성들이 왔습니다.
임신 8-10주 내외의 여성들은 서의에서 알약 처방을 받고(제가 알기로는 호르몬으로 유럽에서도 가끔 사용하는 나라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중의 부과에 와서는 "익모초고환" "오약고환" 같은 어혈에 관한 중약처방을 받으러 왔습니다. 하루에 최소 20명 넘게 저런 분야의 환자가 오다보니
부과 주임교수였던 분이 저에게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 자기가 서의선생님에게 경구 복용하는 알약에 대한 처방전을 받아줄테니 한국에서도 사용해봐라 라고하셔서 한국은 중국과 의료법이 다르다. 그리고 한의사는 양약 사용을 못한다. 라고 했더니 "한국은 경직되어 있다". 라는 말을 하더군요
문화 차이겠죠 그리고 사회구조의 차이가 워낙 다르구요
어째튼 저 파트는 저에게 크게 유용한 부분은 아니였으나
부과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북경의 소재병원이고 게다가 중국이 자랑하는 "중의학연구소"의 부속병원이다 보니 부과에는 북경주재 서양 외교관 가족이라던가 외교관 자신들이 임신에 관해 진료를 받으러 오는 걸 많이 참관하게 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이미 많은 서양의학시술로 난임을 해결하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 환자군으로
중의의 침구와 탕약으로 자신들의 몸의 밸런스가 맞춰지고 때때로 임신의 결과를 얻게 되니 부과에서는 유산이후의 치료목적을 위해 오는 중국인 여성과
임신을 위해 방문하는 서양여성들 케이스를 참관하게 되었습니다.